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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혈주의 vs 다민족주의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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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결혼이주여성 18만명, 외국인 근로자 40만명, 외국인 100만명인 시대다. 지난해 다민족·다문화 시대에 어울리는 법과 제도, 문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졌다.

TV 프로그램 ‘러브 인 아시아’ ‘미녀들의 수다’ ‘사돈, 반갑습니다’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산 너머 남촌에는’ ‘꽃 찾으러 왔단다’ ‘황금신부’ ‘미우나 고우나’ 등에서는 하이옌, 에바, 사오리 등 외국인이 연예활동을 펼치고 있다. 외국인(조선족 처녀)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삼류 건달과 위장결혼한 뒤 가슴 아리게 죽어가는 영화 ‘파이란’에서처럼 3D 업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난쟁이에 불과하던 지난날과 비교하면 실로 격세지감이다. 어느덧 대한민국은 외국인이 살기 좋은 열린 나라가 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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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박범신의 소설 ‘나마스테’(한겨레출판)를 읽다 보면 차별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 우리 안의 서양숭배주의·오리엔탈리즘·인종주의, 지나친 물신숭배로 인한 정신적 가치의 상실 등 닫힌 한국사회의 문제점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세, 세상이… 화안…해요”라며 신우의 부천시 춘의동 희망로 7번지 집 뒤뜰에 무단침입한 네팔 남자 카밀은 그의 여자친구 사비나와 다짜고짜 방을 달라고 청한다. 그리고 셋이서 같이 산다. 일하던 공장의 영업부장이 폭력을 행사하자 도망친 카밀은 사비나와 네팔에서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었다. 사비나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뒤 연락이 두절되자 한국으로 사비나를 찾아온 것이다.

코리안드림의 외국인들 몇 년 전까지 우리 모습

하지만 어머니 병원비 때문에 사비나가 카밀의 통장을 훔쳐 달아나자 카밀은 충격에 빠지고, 신우는 카밀을 보살펴주다 사랑에 빠진다. 손재주가 좋은 카밀이 만든 의자와 그네, 요리뿐 아니라 눈이 호수처럼 깊은 카밀의 자상함이 신우의 가슴을 움직였다. 신우 또한 카밀처럼 소수자로서의 아픔이 깊기에 동병상련이 사랑의 씨앗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신우는 카밀을 만나기 전, 미국의 LA 흑인폭동 사건 때 히스패닉계의 총탄에 아버지와 동생을 잃고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엄마와 작은오빠 가족과 함께 돌아왔다. 카밀과 사비나의 코리안드림처럼 신우네 가족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갔다 풍비박산이 났던 것이다. 네팔 출신 외국인 노동자와 아메리칸드림의 상처를 입고 귀국한 교포 출신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나마스테’는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라 죽음으로 치달을 만큼 열악한 외국인 노동자의 코리안드림이 사실은 한국 사람들의 아메리칸드림과 진배없고, 이것은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소수자의 삶을 황폐화하는 병폐가 있음을 비판한 것이다.

작가 또한 후기에서 집필 동기가 2003년 11월11일 경기도 성남의 단대오거리역 CCTV에 잡힌 화면에서 비롯됐다고 밝힌다. 뉴스를 통해 방영된 그 화면은 스리랑카 출신 외국인 노동자 다르카가 지하철에 뛰어드는 장면이었다. 그는 31세로 스리랑카의 크리켓 선수 출신이었다. 당시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 특히 4년 이상 한국에 체류한 외국인 노동자는 새로 발효된 ‘외국인근로자고용법’에 의해 강제추방의 길로 내몰려 지하철로 뛰어들고, 목을 매고, 배에서 뛰어내리는 등 자살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카밀은 신우와 딸 애린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가 외국인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의 선봉에 서게 되고, 결국 호텔 위에서 장렬하게 산화한다. 고층건물 옥상에서 불꽃이 돼 떨어지는 지아비를 살리기 위해 그를 안으려고 달려간 신우는 식물인간이 돼버리고 딸 애린이 열 살 때 죽고 만다.

이후 시간은 덧없이 흘러 2021년, 미국의 큰외삼촌 집에서 성장한 애린은 아버지의 고향인 네팔의 마르파로 떠난다. 네팔에서 사비나가 낳은 이복 남동생과 함께 히말라야의 만년 얼음산이자 작가가 영혼의 심지라고 부르는 그곳,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없다는 카일라스의 준령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거기서 속삭인다.

“세상이 화안해요.”

작가는 네팔의 카일라스를 단순히 카밀의 고향 지명으로서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힌두교와 불교의 세계가 녹아 있는 신화적 근원이자 삶과 죽음의 경계도 없고, 부자와 빈자의 층하도 없고, 문명과 반문명의 간격도 없는 인류가 가야 할 지혜의 땅, 그 보통명사로 그렸다고 한다. 이런 작가의 의도가 애린의 마지막 말에 압축적으로 나타난다.

카밀과 같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언제부터 한국에 몰려든 것일까.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은 저임금 노동력을 수출하던 나라에서 값싼 노동력을 수입하는 나라로 바뀌었다. 대한민국보다 못사는 나라들의 노동력이 ‘환율의 마법’에 이끌려 코리안드림을 이루고자 한국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90년대 초까지 이들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렇다 할 정책은 없었고, 91년 11월에야 산업연수생 제도가 마련됐다. 이 법 아래에서 이주노동자는 ‘근로자’가 아닌 ‘연수생’ 신분일 뿐이었다. 당연히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체불과 산업재해, ‘묻지마 폭행’ 등의 인권침해를 겪어야 했다.

“우리의 기원은 혼혈민족 … 생태학상 섞여야 강해져”

그러다 2004년 8월 고용허가제가 실시돼 이 계약을 맺는 나라를 위주로 일부 이주노동자에게 ‘근로자’의 지위를 부여했다. 노동법, 산재보상보험법, 최저임금법을 적용해준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는 2005년 2517명에서 2006년 3406명으로 889명이나 증가했다. 또한 불합리한 ‘고용허가제’ 강행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불법체류’를 양산하면서도 국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잔혹한 단속을 주기적으로 벌이고 있다. 불법체류자들을 사냥하듯 구금해 감옥과 다름없는 보호소에 집어넣은 비극의 결과는 2007년 여수 화재 참사가 여실히 보여준다.

러시아계 귀화인인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는 ‘당신들의 대한민국’(한겨레출판)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순혈주의의 근저인 우리 안의 인종주의의 단면인데, 이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근대화된 유럽을 숭배하면서 이웃 아시아는 깔보던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욕망을 닮았다고 일갈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순혈민족일까.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삼성경제연구소)에서 우리 민족의 기원은 남방계 30~40%, 북방계 60~70%의 혼혈민족이라며 생태학적 차원에서 보면 자연은 순수를 혐오하고 생명의 진화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줄곧 다양해지는 방향으로 달려왔듯, 섞여야 강해지고 섞여야 건강하고 섞여야 아름답다고 했다.

유전자가 다양하지 못해 늘 전염병 앞의 등잔불처럼 살아가야 하는 단일민족이 아니라 정력적이고 아름다운 혼혈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려면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단군 이래 5000년 단일민족이라는 패러다임은 낡은 유물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또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을 장려하는 것보다 노동인구의 이민을 좀더 자유롭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이민 인구는 상대적으로 젊은 데다 제1세대 이민 여성들의 출산율 역시 높고, 미국이 선진국들보다 고령화의 충격에 덜 흔들리는 까닭은 일찍부터 문호를 개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이민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던 독일도 2020년까지 노동인구 100만명을 유입하고, 일본도 매년 5년 기한으로 50만명을 유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도 순혈주의보다는 다민족·다문화가 한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해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나마스테”는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어서 오세요, 건강하세요, 행복해지세요, 다시 만나요 등의 광범위한 뜻을 가진 네팔 말이다.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다. 정리하면 TV 속 화려한 외국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도 좋지만 우리 주변의 ‘카밀’이 어떻게 대한민국과 회자정리 거자필반할지를 생각해보는 게 다민족·다문화 시대의 글로벌 코리아를 진정으로 꿈꾸는 것이 아닐까.

세상이 화안해진다는 것은 그늘에 따뜻한 햇살을 내리쬐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만수 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도서출판 일빛 편집장

from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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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oyul's papa

1월 24, 2008 , 시간: 8:25 오전

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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